2024년 11월 16일

기억하다2025. 9. 11. 11:00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의 일요일이었다. 아내는 아기에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모유 수유를 했고, 수유 시간을 종이에 꼼꼼히 기록했다. 아침 수유를 마친 아기는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우리도 침대에서 조금 늦장을 부리다 배가 고파 밥을 해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냉동 돈가스를 꺼냈다.

 

“내가 요리할 테니 쉬고 있어.”
그렇게 말했지만, 아내는 늘 그렇듯 함께 준비하자고 했다. 카카오 스피커로 주말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베란다와 부엌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맞바람이 들어오며 집 안 가득 선선한 바람이 흘러들었다.

 

돈가스를 굽고 보니, 소스가 없었다. 사 오겠다고 하자 아내는 굳이 그러지 말라며 케첩이나 있는 소스를 쓰자고 했다. 그때 문득 집에서 직접 소스를 만들 수 있다는 영상이 떠올랐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루를 만든 뒤, 케첩과 굴소스를 섞었다. 소스 맛을 본 아내는 말없이 와사비를 꺼내왔다.

 

밥은 냉동 밥을 데워서, 반찬은 무김치를 먹기 좋게 잘라서, 국은 오래 전 코스트코에서 사둔 수프 가루를 타서 준비했다. 음식이 맛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그 순간에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분명히 기억한다. 이런 날들이 오래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기는 곤히 자고 있었고, 재즈는 잔잔히 흘렀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아내가 곁에 있던 어느 가을의 일요일이었다.

 

Posted by 탄탄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