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후부터 참 많은 물건들을 샀다. 만년필 부터 컴퓨터, 카메라, 휴대전화 등 사고 싶은 물건이 계속 생각났다. 물건을 고를 때 유튜브와 블로그 리뷰들을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그 시간이 즐겁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즐거움은 결제를 하고, 물건을 받고, 실제로 사용을 하는 그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이런 경우가 하도 많아서 물건을 사기전에 그 물건이 필요한 이유를 적어보고, 그 물건을 사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한번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버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핑계를 만들어 사버린다. 솔직히 최근에 산 수많은 물건들 중 아직까지 만족하며 사용하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몇 번 사용해보다가 어디 구석에 처박아놓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필요하다기 보다는 사고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물건일수록 더욱 그랬다.
학교에서 영상을 공부 할 때 굉장히 기억에 남는 말이 3학년때 들었던 수업의 교수님이 해주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다’ 였다. 아무리 스펙이 좋고, 쓰임세가 많아도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다면 그건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산 많은 것들은 그다지 살 필요가 없다. 만년필대신에 모나지 153을 쓰면 되고, 굳이 좋은 카메라를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욱 좋은 필기감을 위해 더욱 만족스러운 영상과 사진을 위해 더욱 좋은 것들을 산다. 한동안 ‘더 좋은 필기감’이나, ‘만족스러운 영상과 사진 퀄리티’ 보다 ‘좋은’ 만년필, ‘좋은’ 카메라에 더욱 집중했던 것 같다. 만년필로 무엇을 쓰는 것 보다 만년필을 보는 것에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다.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은 만년필이 아니라, 만년필을 이용해 쓴 글인데 말이다.
물건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이용해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 더 좋은 만년필, 더 좋은 물건이 아닌, 그 물건을 이용해 더욱 의미 있고, 더 좋은 일을 하고 싶다. 물건 자체보다는 그 물건을 이용해 내가 무엇을 해냈다는 것에 더욱 집중해야겠다. 물건을 포장했던 쓰레기만 남기고 싶지 않다.
16. 11. 07
'살아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북 (0) | 2018.06.19 |
---|---|
디아블로2를 지웠다. (0) | 2018.01.07 |
시발비용 (0) | 2017.12.12 |
글쓰기 (0) | 2017.04.04 |
필름사진 - 2016년 봄, 강화읍 (0) | 2016.07.25 |
필름사진 - 2016년 봄, 강화읍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유효기한이 10년이 지난 필름을 찾았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필름사진을 찍어보았다.
필 름 : 후지칼라 수퍼리아 100 (~2006년)
카메라 : 코닥 레티나 IIIc
2016년 봄 강화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