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부터 정리하라 - 윌리엄 맥레이븐
독서기간 : 18. 9. 18. ~ 23.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다가 택사스 주립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미 해군 제독의 졸업축사 영상을 본적이 있다. 제목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였다. 약 6분짜리 영상이었는데, 보통의 페이스북 포스트가 그렇듯이 보고, 공감하고, 깨끗이 잊어버리고 살았다. 주의 깊게 본 영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바꾼 그런 영상은 아니었다.
이 책, ‘침대부터 정리하라’도 우연히 사무실 사람의 자리에서 봤다. 126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맥레이븐(William H. McRaven)은 학군출신 미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37년 간 복무후 전역한 예비역 해군대장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소한 일들’이다. 저자는 그 방법들을 10개의 목차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며 하루를 시작하라’,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오직 심장의 크기만이 중요하다’, ‘삶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 ‘실패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담대하게 도전하라’,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맞서라’, ‘어둠을 뚫고 나아가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저자는 참 당연하고 어디에서 들어본 이야기들을 자신의 군 생활 일화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설탕쿠키고 또 하나는 서커스다.
설탕쿠키
미 네이비실 훈련 중 규칙을 위반하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모래밭을 뒹구는 <설탕쿠키>라는 벌칙이 존재한다. 설탕쿠키가 된 후에는 하루종일 온몸에서 모래가 지근거리는 상태로 지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벌칙이 힘든 이유는 다른것보다 어떤 주기나 이유도 없이 무차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젖은 몸뚱이와 모래만 남을때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잘했더라도 설탕쿠키 신세를 면치 못할때가 있다. 그렇다고 불평하지 말라.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지 말라. 당당하게 일어나서 미래를 보고 계속 나아가라!”
서커스
미 네이비실 훈련에서 말하는 서커스는 그날 훈련에서 기준에 들지 못하는 훈련병을 대상으로 훈련이 끝난 매일 오후 실시되는 두시간짜리 맨몸운동이다. 한국 해병대에서 실시하는 과실자 훈련과 같은 개념이다. 저자는 서커스가 두려웠던 이유를 과외 훈련의 여파로 다음날까지 피로가 누적되고 결국 또다시 기준에 미달되고 또다른 서커스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굴레에 빠진 수많은 훈련병들이 중도에 포기했다. 하지만 서커스는 포기하지 않고 버틴 저자를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만들었고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수없이 많은 서커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패에 따른 대가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교훈삼아 자신을 단련시킨다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이해서도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최고의 자리를 내준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는 예비역 해군대장인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지키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내 주변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고통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주변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고집과 때로는 답답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봤었던 적도 많다. 어쩌면 그런 나의 태도가 내 앞에 있는 벽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요즘이고 내 기대치에 한참을 못 미치는 나의 능력과 습관에 사소한 절망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절망감은 대학교를 졸업했을때도,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고등학교 때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이러한 절망감을 이기고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묵묵히 내 앞에 주어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부터 아침에 일어나 침대부터 정리한다. 군대 훈련생 시절을 제외하면 하지 않았던 일이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왜 저자가 침대부터 정리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침대부터 정리하며 시작하는 하루는 그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날이 된다.
사람들은 위안이 도리만한 무언가를, 다시 하루를 시작한 동기를 부여해 주고 수시로 추잡한 면모를 드러내는 세상 속에서 자부심을 느낄만한 무언가를 찾는다. 그 무엇도 인간의 신념이 주는 힘과 위안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침대를 정리하는 단순한 행위 하나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고, 하루를 제대로 끝냈다는 만족감을 선사해 줄 수 있다.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 - 윌리엄 맥레이븐 예비역 미해군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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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케줄러를 사용한다.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네모 칸을 그려놓고 그 옆에 해야 되는 일들을 적는다. 그 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꼭 적혀있는 항목 중 하나가 ‘퇴근 한 후 옷 걸어놓기’다. 나는 정리를 참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방은 그다지 깔끔하지가 못하고 직장에서도 내 책상이 제일 너저분하다. “쓰고 나면 제자리”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참 많이 강조하셨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머니는 중학교 1학년 교복을 입기 시작한 후부터 학교 갔다 온 뒤에는 내가 교복을 옷장에 잘 걸어두기를 바랬다. 생각해보면 그게 참 힘들었다. 옷을 거는 그 짧은 시간이 귀찮아 옷을 바닥에 훌훌 벗어 놨다. 방은 너저분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물론 방이 너저분할 때보다 방이 깨끗할 때 훨씬 기분이 좋았지만 청소가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이 버릇은 내가 미국에서 생활했을 때나, 돌아와서 군에 입대한 뒤 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을 가진 후에는 이 버릇을 조금이라도 없애보고자 ‘옷 걸어놓기’를 항상 스케줄러에 써놓는다. 그리고 최대한 매일 걸어놓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리정돈이 잘 안되고 그러다보니 일처리 또한 꼼꼼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주말 한 달 만에 여자친구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모든 시간이 완벽했으면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꼼꼼하지 못했고, 너저분하고 생활력 없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기분이다. 일적으로는 전문성을 갖추고 여자친구에게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옷 걸어놓기’부터 시작해 빨리 나의 약점을 고치고 싶다. 지금보다 더 깔끔하고 꼼꼼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18.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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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글씨로 투박하게 HISTORY라고 적혀있고, 오른쪽 발 두 개가 위에 그려져 있는 이 노트를 나는 2010년 여름에 샀다. 강릉 포남동 청송아파트 옆 수협 골목으로 들어가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꽤 큰 규모의 문구ㆍ완구점이 있는데 현금으로 계산하면 항상 100원에서 많게는 500원까지 깎아줬다. 이 노트를 산 날, 자전거를 타고 0.5mm HB 샤프심과 지우개를 사러가서 공책을 구경하다가 충동적으로 샀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때 한창 좋아하던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있었다. 친구들보다 한 학기 먼저 대학교에 합격해 누구보다 마음 편하고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대학입시에 정신이 없었다. 대금을 부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어깨에는 항상 대금이 든 기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그 아이가 6시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매일 내가 츄파춥스 사탕 두 개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 아이의 집까지 10분가량을 함께 걸어 데려다주고 30분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그 설렘이 좋았다.
그래서 이 노트는 2010년 6월 18일, 사춘기 막바지의 감성으로 쓴 <용강동 버스정류장>이라는 글로 시작한다. 그 이후로 이 노트는 지금까지 나의 고민, 감정들을 적는 비밀 일기장이 되었다.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먼 타지에서 공부하며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전 여자친구와 만남부터 이별까지 모두 담겨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한 이후로의 고민도 함께 담겨있다.
아직 반도 못쓴 이 노트를 잃어버리게 되면 마음이 참 아프면서도 나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 불안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노트를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 노트의 마지막 장은 대학교 4학년 당시 공부했던 언어학 수업의 노트도 있고 중간중간 일하며 급하게 적은 메모도 많다.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그린 낙서도 있고 한자를 외우며 쓴 빽빽이도 있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마구 쓰는 노트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부담없이 이런 글을 휘갈겨 쓸 수 있는 노트정도. 그냥 딱 이정도로 쓰는 노트인 것 같다.
- 2018. 6. 18. 이 노트가 나에게로 온지 8년째 되는 날을 자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