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지나고 2026년이 시작됐다. 새해 다짐을 잘 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만큼은 몇 가지 목표를 명확히 잡아두기로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방식으로 성과를 관리한다. Objective는 일정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방향이고, Key Result는 그 방향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다. 아직 이 체계가 몸에 완전히 익은 상태는 아니지만, 내 상황에 맞게 올해 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KR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1. 매주 탄탄이 만나기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목표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탄탄이를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순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보면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 우선순위는 고민할 필요 없이 항상 1번이다.

2. USCPA 최소 두 과목 합격

2024년 7월 이직과 함께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학점을 채우고 시험도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아내의 투병으로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다. 작년 말까지는 생활을 정리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다르다. 총 4과목 중 최소 2과목 합격을 목표로 집중한다. 다섯 가지 중 난이도는 가장 높지만, 피하지 않기로 했다.

3. MBA 과정 시작

MBA는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선택지였다. 상황이 급변했고, 앞으로는 탄탄이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이 분명해졌다. 지금의 커리어와 향후 선택지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직장에서의 업무 강도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만 33살이라는 나이 역시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올해 가을학기부터 원하는 학교의 MBA 과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4. 체지방률 20% 이하로 만들고 유지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 먹는 것도 좋아한다. 작년에는 스트레스를 거의 폭식과 폭음으로 풀었고,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체중이 급격히 늘었고, 체지방률은 20%를 넘겨 27%에 가까워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문제의식이 생긴다.

 

우선 체지방률을 20% 아래로 낮춘다. 이후에는 유지에 집중한다. 단기 감량이 아니라 생활 습관의 재정비다.

5. 주 1회 이상 블로그 글 발행

위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일기를 쓰지는 않으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블로그다. 천천히 가되 멈추지 않는다. 이 발버둥의 과정과 생각들을 꾸준히 남기고, 그대로 공유한다.

 

 

예전부터 스토아 철학을 좋아했다. 요즘은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한 문장이 자주 떠오른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어난다.”

 

올해를 살아가는 모토로 정했다.

 

해뜨는 새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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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탄탄걸음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의 일요일이었다. 아내는 아기에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모유 수유를 했고, 수유 시간을 종이에 꼼꼼히 기록했다. 아침 수유를 마친 아기는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우리도 침대에서 조금 늦장을 부리다 배가 고파 밥을 해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냉동 돈가스를 꺼냈다.

 

“내가 요리할 테니 쉬고 있어.”
그렇게 말했지만, 아내는 늘 그렇듯 함께 준비하자고 했다. 카카오 스피커로 주말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베란다와 부엌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맞바람이 들어오며 집 안 가득 선선한 바람이 흘러들었다.

 

돈가스를 굽고 보니, 소스가 없었다. 사 오겠다고 하자 아내는 굳이 그러지 말라며 케첩이나 있는 소스를 쓰자고 했다. 그때 문득 집에서 직접 소스를 만들 수 있다는 영상이 떠올랐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루를 만든 뒤, 케첩과 굴소스를 섞었다. 소스 맛을 본 아내는 말없이 와사비를 꺼내왔다.

 

밥은 냉동 밥을 데워서, 반찬은 무김치를 먹기 좋게 잘라서, 국은 오래 전 코스트코에서 사둔 수프 가루를 타서 준비했다. 음식이 맛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그 순간에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분명히 기억한다. 이런 날들이 오래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기는 곤히 자고 있었고, 재즈는 잔잔히 흘렀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아내가 곁에 있던 어느 가을의 일요일이었다.

 

Posted by 탄탄걸음

8월 28일, 내 딸 탄탄이의 돌잔치 날이었다. 장소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사진은 어머니의 지인에게 부탁했고, 행사는 누나가 챙겼다. 나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스트레스만 많이 받았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7월 25일 아내의 생일, 8월 3일 내 생일, 그리고 8월 28일 딸의 생일이었다. 아내의 생일 즈음부터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용량은 점점 늘어났다.


축하해야 마땅한 날임에도, 온전히 기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장인, 장모, 처남을 만나는 것도 버거웠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내 가족이지만, 이제는 마주하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다. 돌잔치 사흘 전, 처남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딸의 얼굴에서 동생 얼굴이 자꾸 겹쳐 보여 아직은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오지 않겠다는 말이 서운했으면서도 이해됐다.

당일, 장인과 장모는 네 시간을 달려 기저귀 여덟 박스를 차에 싣고 왔다. 손녀에게 줄 금수저, 처남이 전해준 금팔찌, 그리고 사돈에게 전하는 금목걸이까지 챙겨왔다.


사진 촬영은 오랜만에 만난 사진작가 형이 맡아줬다. 순한 탄탄이는 다섯 번 옷을 갈아입고 다섯 군데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사진 촬영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잔치는 탄탄이의 일 년을 담은 사진과 영상으로 시작됐다. 화면 속에는 아내의 모습과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돌잡이에서 탄탄이는 오래 망설이다가 연필을 잡았다. 웃음과 탄탄이의 미래에 대한 기원이 쏟아졌다.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며 웃는 자리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할머니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탄탄이는 기분이 좋아져 양가 어른들에게 재롱을 부렸다. “손녀가 우리를 잊지 않도록 자주 와야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장인, 장모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그때 장모가 사진 속에 아내를 합성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생각이었는데, 장모가 대신 말해줘 고마웠다.

 

장인, 장모가 떠난 후 짐을 정리하다가 엄마가 선물받은 금목걸이 상자 속에 편지를 발견했다. 장모가 적은 글이었다. 투병 기간 동안 딸을 돌봐준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돈의 딸이기도 하지만, 나의 며느리이기도 했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장인과 장모는 딸을 잃었고, 내 부모님은 며느리를 잃었다. 처남은 동생을, 누나는 올케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잃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모두에게 예쁜 손녀, 사랑스러운 조카, 소중한 딸이 생겼다. 누군가를 잃은 상처를 안은 채, 새로운 생명의 첫 생일을 함께 축복하는 사람들. 딸의 돌잔치에서 우리는 모두 축복의 자리에 앉은 ‘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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