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듯 편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나에게는 아내의 동네 친구들이 그렇다.

 

아내는 나보다 두 살 많다. 자연히 그 친구들과 그들의 남편들 역시 나보다 나이가 많다. 모이면 늘 내가 막내가 된다. 특히 남편들끼리 앉아 있으면 형들 사이에 낀 동생이 된다. 불편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완전히 편하지도 않았다.

 

아내와는 대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말이 잘 통하던 사람들이다. 오래 볼 사이라 생각하며 나름대로 맞춰왔다. 그중 한 커플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졌다. 함께 늙어갈 줄 알았다.

 

아내가 아팠을 때 그들은 매주 찾아왔다. 장례식 내내 자리를 지켰고, 이후에도 나와 탄탄이를 챙겼다. 시골까지 내려와 아이를 안아주고 시간을 보내주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함께하면 할수록 아내의 빈자리가 또렷해졌다. 그 자리에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피하게 되었다. 거리를 두면서도 그들은 늘 탄탄이를 물어봤다. 나는 그들의 경사에 참석하지 못한 날들을 마음속에 쌓아두었다. 한 번은 얼굴을 보고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저녁 약속을 잡았다.

 

아내와 자주 가던 치킨집. 6시 30분 약속이었다. 퇴근 후 하나로마트에 들러 딸기를 샀다. 가장 비싼 것으로 두 팩을 골랐다. 옛 동네로 향하는 길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하나로마트는 예전에 살던 집 앞에 있다. 집을 보는 순간 마음이 내려앉았다.

 

6시 20분 치킨집 도착. 잠시 차 안에 있다가 가게로 들어갔다. 손님이 다섯 명이라고 하니 4인석에 의자 하나를 더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홀 쪽에 혼자 앉았다. 술에 취해 웃고 있는 테이블, 아이와 함께 온 가족 테이블. 약속 시간은 지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괜히 심장이 빨라졌다.

 

늦는다는 연락이 따로따로 왔다. 출발이 늦었고, 길이 막힌다고 했다. 의자 하나를 더 끌어다 놓은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6시 50분.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메시지를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전화가 왔다. 거의 도착했으니 잠깐 얼굴만 보자고 했다. 전해줄 것이 있다고.

 

급히 뛰어와 숨을 고르던 모습. 당혹스러운 표정.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선물을 건네받고, 나는 딸기를 건넸다. 더 머물 수 없을 것 같았다. 차에 올라 바로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비겁하게 도망친 것은 아닐까.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닐까. 아내의 “으이그”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3월에는 탄탄이를 보러 시골로 오겠다고 했다.

 

이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고마움과 불편함이 함께 있다. 이들은 내 친구라기보다 아내의 친구들이다. 나는 아직 그 경계를 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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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8개월이 조금 넘은 우리 딸. 에너지가 넘친다. 아무래도 기운이 많이 떨어진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자라다 보니, 유튜브와 텔레비전을 자주 접한다. 뭐라 하기도 애매한 위치라, 날이 따뜻해지면 딸을 데리고 계속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주말은 내내 10도 이상으로 포근했다. 아침부터 딸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오전에 1시간 30분, 오후에 2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딸이 가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걷고, 어디까지 갈지 함께 정했다. 결국 내가 먼저 지쳐 딸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손을 흔들고, 돌고래 소리를 내며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힘을 얻었다. 딸 덕분에 나 역시 햇빛을 쬐고 몸을 움직였다. 저 아이는 어디에서 저런 힘을 낼까. 어쩌면 저렇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할까. 함께 걷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무너져 있던 나를 다시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 전 아내의 1주기였다. 그 즈음부터 아내가 꿈에 자주 나타났다. 밝은 모습이면 좋았겠지만, 꿈속에서도 병과 싸우고 있었다. 한밤중에 깨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거기서는 아프지 말지. 내가 또 도울 수 없다는 무력감과, 꿈속에서 함께였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잠에서 깨면 그 장면이 산산이 부서져 더 힘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그러지 못하게 붙잡는 이유는 결국 탄탄이다.
 
탄탄의 손을 잡고,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가고 싶다. 어느 날 아빠 손을 놓고 혼자 씩씩하게 걸어갈 그날까지, 나는 그 곁에 서 있을 생각이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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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마지막 블로그 글에서 올해 목표로 매주 1회 이상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는,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1월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은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그 이야기는 아마 나중에야 정리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집도 새로운 곳으로 옮겼고, 공부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그래서 다시 스케줄러를 쓰기로 했다. 겉멋이 한창이던 대학생 때부터 노트는 늘 몰스킨이었다. 돈을 벌기 시작한 뒤에는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만년필에 빠져 늘 들고 다녔다. 전역 후에는 불렛 저널을 알게 되어 그 방식으로 스케줄을 관리했고, 지금 회사로 오면서는 결국 모든 걸 디지털로 옮겨버렸다.

 

짐을 정리하다가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줬던 만년필과, 2019년에 한 장 쓰고 그대로 덮어둔 몰스킨 노트가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스케줄러로 쓰기로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몰아치면서, 목표를 세워놓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처리만 하던 내 모습부터 바꾸고 싶었다.

 

내가 몰스킨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꽤 근사하게 에이징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약 30주를 함께할 이 스케줄러가 잘 닳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목표를 향해 차분하게 걸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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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지나고 2026년이 시작됐다. 새해 다짐을 잘 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만큼은 몇 가지 목표를 명확히 잡아두기로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방식으로 성과를 관리한다. Objective는 일정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방향이고, Key Result는 그 방향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다. 아직 이 체계가 몸에 완전히 익은 상태는 아니지만, 내 상황에 맞게 올해 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KR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1. 매주 탄탄이 만나기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목표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탄탄이를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순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보면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 우선순위는 고민할 필요 없이 항상 1번이다.

2. USCPA 최소 두 과목 합격

2024년 7월 이직과 함께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학점을 채우고 시험도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아내의 투병으로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다. 작년 말까지는 생활을 정리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다르다. 총 4과목 중 최소 2과목 합격을 목표로 집중한다. 다섯 가지 중 난이도는 가장 높지만, 피하지 않기로 했다.

3. MBA 과정 시작

MBA는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선택지였다. 상황이 급변했고, 앞으로는 탄탄이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이 분명해졌다. 지금의 커리어와 향후 선택지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직장에서의 업무 강도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만 33살이라는 나이 역시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올해 가을학기부터 원하는 학교의 MBA 과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4. 체지방률 20% 이하로 만들고 유지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 먹는 것도 좋아한다. 작년에는 스트레스를 거의 폭식과 폭음으로 풀었고,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체중이 급격히 늘었고, 체지방률은 20%를 넘겨 27%에 가까워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문제의식이 생긴다.

 

우선 체지방률을 20% 아래로 낮춘다. 이후에는 유지에 집중한다. 단기 감량이 아니라 생활 습관의 재정비다.

5. 주 1회 이상 블로그 글 발행

위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일기를 쓰지는 않으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블로그다. 천천히 가되 멈추지 않는다. 이 발버둥의 과정과 생각들을 꾸준히 남기고, 그대로 공유한다.

 

 

예전부터 스토아 철학을 좋아했다. 요즘은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한 문장이 자주 떠오른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어난다.”

 

올해를 살아가는 모토로 정했다.

 

해뜨는 새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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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내 딸 탄탄이의 돌잔치 날이었다. 장소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사진은 어머니의 지인에게 부탁했고, 행사는 누나가 챙겼다. 나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스트레스만 많이 받았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7월 25일 아내의 생일, 8월 3일 내 생일, 그리고 8월 28일 딸의 생일이었다. 아내의 생일 즈음부터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용량은 점점 늘어났다.

축하해야 마땅한 날임에도, 온전히 기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장인, 장모, 처남을 만나는 것도 버거웠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내 가족이지만, 이제는 마주하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다. 돌잔치 사흘 전, 처남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딸의 얼굴에서 동생 얼굴이 자꾸 겹쳐 보여 아직은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오지 않겠다는 말이 서운했으면서도 이해됐다.
당일, 장인과 장모는 네 시간을 달려 기저귀 여덟 박스를 차에 싣고 왔다. 손녀에게 줄 금수저, 처남이 전해준 금팔찌, 그리고 사돈에게 전하는 금목걸이까지 챙겨왔다.

사진 촬영은 오랜만에 만난 사진작가 형이 맡아줬다. 순한 탄탄이는 다섯 번 옷을 갈아입고 다섯 군데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사진 촬영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잔치는 탄탄이의 일 년을 담은 사진과 영상으로 시작됐다. 화면 속에는 아내의 모습과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돌잡이에서 탄탄이는 오래 망설이다가 연필을 잡았다. 웃음과 탄탄이의 미래에 대한 기원이 쏟아졌다.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며 웃는 자리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할머니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탄탄이는 기분이 좋아져 양가 어른들에게 재롱을 부렸다. “손녀가 우리를 잊지 않도록 자주 와야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장인, 장모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그때 장모가 사진 속에 아내를 합성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생각이었는데, 장모가 대신 말해줘 고마웠다.
 
장인, 장모가 떠난 후 짐을 정리하다가 엄마가 선물받은 금목걸이 상자 속에 편지를 발견했다. 장모가 적은 글이었다. 투병 기간 동안 딸을 돌봐준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돈의 딸이기도 하지만, 나의 며느리이기도 했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장인과 장모는 딸을 잃었고, 내 부모님은 며느리를 잃었다. 처남은 동생을, 누나는 올케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잃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모두에게 예쁜 손녀, 사랑스러운 조카, 소중한 딸이 생겼다. 누군가를 잃은 상처를 안은 채, 새로운 생명의 첫 생일을 함께 축복하는 사람들. 딸의 돌잔치에서 우리는 모두 축복의 자리에 앉은 ‘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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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마지막으로 쓴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018년 12월 아내와 결혼했고, 세 번의 이사를 했다. 2020년 7월에는 고양이 달구를 입양했고, 작년 8월에는 너무나 예쁜 딸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딸의 100일 잔치날. 침을 맞으러 간다던 아내는 한의사의 권유로 대학병원을 찾았고, 응급실 CT 결과 ‘췌장암 의심’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결국 췌장암 간 전이, 손쓸 수 없는 말기라는 확진으로 이어졌고, 소견을 들은 지 두 달 만에 아내는 멀리 여행을 떠났다.
 
그때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다. 아직도 이게 현실인지 모르겠다. 수면장애, 우울증으로 정신과 다니며 약을 먹고 있다. 죽음을 생각한 적도 많았다.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먼저 떠난 아내,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생각하면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쯤 괜찮아질지, 과연 괜찮아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두서없이 쓰는 글처럼, 하루하루도 두서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고, 살아가며 느낀 것들,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을 여기 남겨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정해둔 것은 단 한 가지다. “일단 계속 살아가보기로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하고, 그것을 흔적으로 남기는 일이다. 나는 그 흔적을 쌓아가려 한다. 그래서 오래전의 이름 ‘지속가능한 뻘짓’을 지우고, 이곳을 ‘act of doing’’이라 부르기로 했다. 더는 허망한 뻘짓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로, 작은 발걸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언젠가 만날 아내에게 보여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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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살아가다2020. 1. 14. 12:00

2020년 새해에는 관성으로 사는 생활을 바꿔보려고 한다. 관성의 다른말은 타성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데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3개월을 100일로 잡고 2020년 1월 14일 오늘부터 4월 22일까지 2가지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첫번째는 매일 짧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서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최종적으로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많다. 말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고, 사진으로 보여줄수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들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하기의 가장 기본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를 알고 있음에도 글을 열심히 쓰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매일매일 글을 써서 이 블로그에 올려보련다.

 

두번째는 매일 3km 이상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젊다. 하지만 더 어렸을때에 비해 확실히 체력이 더 빨리 떨어지고 몸에 살이 붙는 것이 느껴진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운동, 달리기를 매일 하려고 한다. 작년에도 가끔 매일 5km씩 달렸다. 그래도 30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달리기를 하지 않을 핑계는 참 많다. 달리기는 미세먼지나 비, 눈과 같이 날씨의 영상을 많이 받는 운동이다. 다행히 직장에 러닝머신이 있다. 또한 비는 오히려 달리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일단 3km 이상으로 목표를 잡았다. 그래도 가능하면 모든 달리기에서 5km를 뛰고싶다.

 

이외에도 일주일에 한편씩 유튜브 비디오 올리기, 일주일에 책 한권씩 읽기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일단 매일 글쓰기와 매일 달리기 이렇게 두가지를 먼저 시작해보려고 한다. 2020년은 나에게 참 중요한 한해다. 몇년전부터 준비한 큰 목표를 잡아야 하는 한해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작은 습관부터 잡아가야겠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

 

20.1.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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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걸어놓기

살아가다2018. 7. 16. 12:00

는 스케줄러를 사용한.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네모 칸을 그려놓고 그 옆에 해야 되는 일들을 적는다. 그 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꼭 적혀있는 항목 중 하나가 퇴근 한 후 옷 걸어놓기. 나는 정리를 참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방은 그다지 깔끔하지가 못하고 직장에서도 내 책상이 제일 너저분하다. “쓰고 나면 제자리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참 많이 강조하셨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머니는 중학교 1학년 교복을 입기 시작한 후부터 학교 갔다 온 뒤에는 내가 교복을 옷장에 잘 걸어두기를 바랬다. 생각해보면 그게 참 힘들었다. 옷을 거는 그 짧은 시간이 귀찮아 옷을 바닥에 훌훌 벗어 놨다. 방은 너저분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물론 방이 너저분할 때보다 방이 깨끗할 때 훨씬 기분이 좋았지만 청소가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이 버릇은 내가 미국에서 생활했을 때나, 돌아와서 군에 입대한 뒤 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을 가진 후에는 이 버릇을 조금이라도 없애보고자 옷 걸어놓기를 항상 스케줄러에 써놓는다. 그리고 최대한 매일 걸어놓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리정돈이 잘 안되고 그러다보니 일처리 또한 꼼꼼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주말 한 달 만에 여자친구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모든 시간이 완벽했으면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꼼꼼하지 못했고, 너저분하고 생활력 없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기분이다. 일적으로는 전문성을 갖추고 여자친구에게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옷 걸어놓기부터 시작해 빨리 나의 약점을 고치고 싶다. 지금보다 더 깔끔하고 꼼꼼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18.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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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살아가다2018. 6. 19. 00:06

 

파란색 글씨로 투박하게 HISTORY라고 적혀있고, 오른쪽 발 두 개가 위에 그려져 있는 이 노트를 나는 2010년 여름에 샀다. 강릉 포남동 청송아파트 옆 수협 골목으로 들어가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꽤 큰 규모의 문구완구점이 있는데 현금으로 계산하면 항상 100원에서 많게는 500원까지 깎아줬다. 이 노트를 산 날, 자전거를 타고 0.5mm HB 샤프심과 지우개를 사러가서 공책을 구경하다가 충동적으로 샀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때 한창 좋아하던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있었다. 친구들보다 한 학기 먼저 대학교에 합격해 누구보다 마음 편하고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대학입시에 정신이 없었다. 대금을 부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어깨에는 항상 대금이 든 기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그 아이가 6시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매일 내가 츄파춥스 사탕 두 개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 아이의 집까지 10분가량을 함께 걸어 데려다주고 30분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그 설렘이 좋았다.

 

그래서 이 노트는 2010618, 사춘기 막바지의 감성으로 쓴 <용강동 버스정류장>이라는 글로 시작한다. 그 이후로 이 노트는 지금까지 나의 고민, 감정들을 적는 비밀 일기장이 되었다.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먼 타지에서 공부하며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전 여자친구와 만남부터 이별까지 모두 담겨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한 이후로의 고민도 함께 담겨있다.

 

아직 반도 못쓴 이 노트를 잃어버리게 되면 마음이 참 아프면서도 나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 불안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노트를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 노트의 마지막 장은 대학교 4학년 당시 공부했던 언어학 수업의 노트도 있고 중간중간 일하며 급하게 적은 메모도 많다.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그린 낙서도 있고 한자를 외우며 쓴 빽빽이도 있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마구 쓰는 노트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부담없이 이런 글을 휘갈겨 쓸 수 있는 노트정도. 그냥 딱 이정도로 쓰는 노트인 것 같다.

 

- 2018. 6. 18. 이 노트가 나에게로 온지 8년째 되는 날을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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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0) 2017.04.04
Posted by 탄탄걸음

 요 몇 달 간 아침 615분까지 출근을 하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 뿐만이 아니라 자투리 시간마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들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 뭔가를 만들고,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시간들을 모두 낭비하고 있다.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것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많아봤자 9시간 정도 되는 것 같다. 8시간 자고, 먹고 싸는데 많이 줘서 1시간 주면 그렇다. 법적으로 정해져있는 근무시간이 8시 반부터 5시 반, 점심 먹을 시간 1시간 포함해서 총 9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아무리 못해도 멍 때리는 시간이 2시간쯤 된다. , 지금 나는 하루에 자투리 시간이 24시간 중에 7시간은 된다. 그런데 그 시간을 유튜브에서 소비적인 콘텐츠를 보는데 쓰고 있다. 얼마 전 부터는 퇴근을 하고 디아블로2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디아블로2를 처음 해봤다.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다른 게임은 안하고 이게임만 했다. 부모님이 컴퓨터 하는 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하셨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무실 때, 기회가 될 때마다 몰래 몰래 게임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득 굉장히 허무해졌다. 게임을 아무리 많이 하고 열심히 해도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 게임을 하지 않았다.

 

요즘 그런 느낌이 또다시 든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은데.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는 것 같다. 피곤해서, 스트레스 받아서라는 핑계를 뛰어 넘고 싶다. 그래서 디아블로2를 지웠다. 그래서 생각을 글로 꾸역꾸역 적어본다. 역시 아이디어와 글로 나오는 결과물은 많이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고 더 다듬고 싶은 글이지만, 그냥 업로드 한다. 전에 이야기 했듯이 계속 글을 쓰고, 계속 만들고 계속 올려야겠다. 항상 다짐으로 끝나는 것 같다. 하는 김에 하나만 더 해보자면 비생산적인 시간들을 조금 줄여야겠다.

 

18.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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